미적-윤리적 장치로서의디지털 미디어에 대한질문지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넷스케이프나 익스플로러 같은 브라우저가 등장했을 때, 유튜브가 등장했을 때, 그리고 구글 안드로이드와 애플 IOS의 휴대전화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여전히 디지털 통신 미디어는 그 바깥의 시점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이 도착하고 트위터에 접속하고 웹2.0의 시대가 개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연후, 우리는 디지털 통신 매체를 더 이상 바깥의 시점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디지털 통신 매체는 더 이상 현실의 외부에 놓인 기술적 통신 수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삶의 사회적 배치와 체험을 조직하는 원리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전환의 효과 가운데 주목할 만한 점은 이것이 미적-윤리적 장치로서 기능하며 새로운 주체성을 생산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이 자신의 자아의 일부처럼 보이는 세계, 트위터에서의 뜨거운 논쟁이 우리가 다루어야 할 윤리적 안건을 구성하고 지정하는 듯 보이는 세계에서, 우리는 세계를 지각하고 상상하는 방식에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땅히 물어볼 수 있다.

아직 세계의 많은 곳에서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 매체에 접속하지 못한 이들이 많고,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가 우리를 곤혹스럽게 할지라도, 발전된 나라에 사는 이들은 더 이상 디지털 통신 매체를 현실을 침입한 낯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거칠게 말해 도시화된 세계로 넘어간 이후 도시와 시골의 이분법에서 시골은 더 이상 현실의 장소가 아니라 목가적인 미적 향수의 대상이 되고 결국 미적 ‘가상(Schein)’이 되어버린 것처럼, 오늘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이분법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아날로그란 이젠 디지털 통신 매체에 접속하지 않은 다른 반쪽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향수를 품은 채 회상해야 하는 세계인 듯 상상될 뿐이다.

근대의 미학적 혁명이 세계와 타자에 대한 상상을 통해 그에 대하여 공감하게 되는 시대를 열었음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공감과 동일시를 비롯한 쟁점들이 근대의 윤리적 정치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자리 잡아왔음을 생각한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들어선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디지털 매체와 기술은 과연 새로운 윤리적-미적 주체성을 형성하는 장치로 기능하는가. 아니면 그것은 우리가 봉착한 윤리적-미적 위기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고자 찾아낸 거짓 용의자에 불과한가. 그것은 새로운 윤리적,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가. 디지털 기술 매체의 미학적 효과에 대한 변증법적 비평은 가능한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함께 다듬어내고 또 그에 해당하는 답을 찾기 위한 토론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작가, 평론가, 기획자, 그리고 학자로서 여러분의 의견을 부탁드린다.

바르토메우 마리
Bartomeu Mari,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내가 태어나고 자란 유럽의 사고방식으로는 주체성은 사람의 속성으로 간주된다. 주체라는 것은 개인들을 지칭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비유적 의미로 보자면 디지털 미디어 또한 하나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매체들(인쇄물이나 방송)은 다소 맹목적으로 디지털 미디어를 따라가고 있으며, 다수의 의견이 진실이 되고 있다. 반대의 경향으로는, 한 언론 분석가가 최근 지적했듯이 “모든 개인이 미디어 출구가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정보의 원천으로 페이스북을 활용하고 있으며 다른 개인들이 올려놓은 정보에 의존한다. 나는 전 세계의 친구들이 올리는 포스팅들을 텔레비전이나 뉴스를 대신하는 정보 소스로서 읽고 보는 것을 즐긴다. 나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집에 텔레비전도 없었던(대신 라디오가 있었다)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곳에는 신문도 없어서 이웃들의 입을 통해 정보가 공유되었다. 나는 말을 통해 정보가 전해지는 문화에서 자랐다. 집에 걸려 있던 달력의 그림들이 유일한 장식이었다. 이러한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디지털 미디어의 엄청난 양적 힘으로 대체되었다. 디지털 미디어가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를 탄생시킬는지의 여부는 디지털 미디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의 태도에 달려 있다. 디지털 미디어는 스스로 생각할 수 없으며, 아날로그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취약하고 조작되기 쉽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심지어 로큰롤조차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자유의 상징이 될 수도 있고 억압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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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드 제렉스
Bernhard Serexhe, ZKM 수석 큐레이터

조너선 해리스
Jonathan Harris, 버밍험대학교 글로벌 아트 & 디자인 학과 교수

준양
Jun Yang, 작가

리엄 길릭
Liam Gillick, 작가

메네네 그라스 바라게
Menene Gras Balaguer, CASA ASIA 문화 및 전시 디렉터

김남시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교수

김신식
독립연구자

김희영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오혜진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