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미학 그리고 정치

메디 벨라 카셈


설치주의, 맥락주의, ‘관계 미학’, 존재론적 접속…… 테크놀로지가 제안하는 새로운 가능성들 너머로, 동시대 미술은 지난 몇 십 년 전부터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자기 안으로 닫힌 자율적 작품들로부터 함께-존재하기라는 새로운 양태의 생산을 향해 솟아오르는 것 같다. 심지어 때로 예술은 오늘날의 그 어떤 정치도 약속할 수 없을 듯한 새로운 정치를 축소해서 제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이를테면 나는 2014년에 있었던 토마스 허쉬혼(Thomas Hirschhorn)의 설치 작업 ‹영원한 불꽃(Flamme éternelle)›을 떠올린다). 그런데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 있다. 현대의 전반적인 미학적-정치적 고민은 바로 게임(jeu)이라는 개념에서 연쇄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철학사에서는 바로 이 개념을 이제까지 완전히 배제해왔다는 것이다. 요컨대 21세기의 예술은, 예술의 게임-되기(devenir-jeu)가 될 것이고, 철학은 매우 긴급하게 이러한 되기의 차원에 놓여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류는 언제나 놀기를 좋아했다. 인간의 운명을 빚어나가게 될 미학적 감수성 혹은 과학적 정신의 윤곽이 발전되기 이전부터 어린아이들은 그들에게 제시된 모든 종류의 게임에 자연스레 뛰어들곤 했다. 심지어 포유동물들조차도 그런 만큼이나 우리와 공유하는 게임의 본능 또한 갖고 있다. 물론 재현적 예술이나 과학이 그들과 우리 사이에 그어놓은 넘어설 수 없는 경계선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요컨대 게임 하는 동물들이 그들의 게임 활동에서 발견하는 것과, 우리가 예술에서 일반적으로 발견하는 것, 그리고 곧 보게 되겠지만, 또한 매우 개별적인 게임들 내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다르지 않음은 너무나 분명하다. 이를테면 포식동물의 잔혹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동물의 게임은 본질적으로 미학적인 미메시스의 원형이며, 이 원형은 다른 종의 동물들도 알고 있는 듯 보이는 유일한 형태의 예술이다. 동물의 게임과 인류의 게임, 그리고 여러 예술들은 죽음 흉내내기(mimer la mort)를 공유한다. 달리 말하자면 죽기 게임(jouer à mourir)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동물의 게임은 암묵적(implicites) 규칙에 따라 전개되는 것 같다. 진짜로 싸우지는 않으면서 싸우기 게임을 한다고 하는, 어떤 종류의 본능적인 합의가 있다. 그런데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자신을 구분하는 기준에 따라 인간의 게임을 정의한다. 요컨대 과학의힘을 빌어 자연법칙들을 만방에 공포하고 자기가 하는 게임들의 규칙들 또한 명시적(explicites)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간만이 홀로, 대자연과 존재의 오래된 규칙들을 전유했기 때문에, 오로지 인간만이 그 규칙들을 새로이 공포할 수 있다. 다시 공포된 이 규칙들은 나쁘게는 정치, 좋게는 게임이라 불린다.

게임은 인간의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영역들 중 하나이며, 그리고 내 생각에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대규모 학살과 이미 우리 목구멍까지 차 올라와 있는 전 지구적 규모의 마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떤 정치적 유토피아를 조금쯤 몽상하게 해주는 유일한 철학적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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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이해해보자. 나는 세계가 거대한 게임의 장으로 변화될 때 인류가 가장 좋은 세계로 나아가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현상학자로서 사회 전체가 게임의 미학적-정치적 기호 아래 놓일 수 있는 가능성의 일반적 특징들을 선취할 뿐이다. 오늘날 현존하는 게임들은, 만약 문명이 문명 자체와 우리들의 목숨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을—그들이 아무리 재능이 없다 할지라도—참여시키면서 이제까지 열거한 모든 예술 형식들을 머릿속에 총동원하여 지금 여기에서 만들어낼 수도 있을 ‘대규모의’ 게임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뒤카스(Ducasse)는 이제 시(詩)는 한 사람이 아닌 모두에 의해 지어져야 하며, 20세기 가장 훌륭한 전위예술가들은 특히 상황주의자와 기 드보르(Guy Debord)인 것 같다고 말하며 위와 같은 점들을 주장한 바 있다. 20세기 최고의 전위주의자들—나는 상황주의자들과 드보르를 염두에 두고 있는데—은 이 점을 인정한다. 1968년 5월은 모두에 의한 예술의 혁명적 게임일 것이다. IRCAM(현대음악연구소)조차 이제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드보르는 전위예술가들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했는데, 그들은 자신들 안에 있는 근본적인 모순 때문에 종말을 고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예술을 생산하게 되는 시대와 사회적 장을 준비하면서도 또 동시에 개별화된 조물주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포기하지는 않고자 했던 모순 때문에 말이다. 상황주의자들의 공동체는 물론이요, 그보다도 훨씬 더 있을 법하지 않았던 ‘68 공동체’도 드보르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다만 천재적이지만 타락하고 음울한 창작자, 바로 드보르 자기 자신뿐이었다. 그만이 홀로, 무정하게 홀로 남아 대항해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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