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또는비물질적 물질

윤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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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는 여전히 종이인가? 내가 이 질문을 떠올리게 된 것은 큐레이터 루시 리퍼드(Lucy Lippard)가 원래 1973년에 발표했던 『여섯 해: 1966년부터 1972년까지 미적 대상의 비물질화(Six Years: The Dematerialization of the Art Object from 1966 to 1972)』를 1997년 재출간하면서 새로 쓴 「탈출 시도(Escape Attempts)」라는 글을 읽을 때였다. 여기서 리퍼드는 개념미술이 “아이디어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작업의 “물질적 형태”는 “부차적이고, 가볍고, 한시적이고, 값싸고, 수수한” 것으로 격하했다는 점에서 “비물질화”를 지향했다고 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은유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미술이 흔히 물질적이라고 하면 연상되는 일련의 특질들을 벗어나려 했으며, 그래서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상대적으로 비물질적인 물질, 이를테면 가볍고 후줄근한 “종이나 사진”을 작업의 매개체로 택했다는 것이다.1
종이 비행기를 통한 탈출의 시도. 이는 물질 자체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 어떤 중력에 대한 반발이며, 물질적 실체 되기에 수반되는 각종 제약을 우회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액자와 좌대”를 벗어나기 위해, 미적 대상을 규정하고 옭죄는 견고한 제도적 틀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신의 몸체를 버린다. 이런 점에서 리퍼드가 조망하는 개념미술의 비물질화는 미술사의 물질적 토대이자 관습의 총체이며 그런 것으로서 미적 탐구의 시작과 끝을 구획하는 미적 매체를 우회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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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ucy R. Lippard, Six Years: The Dematerialization of the Art Object from 1966 to 1972, reprint editi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1, vii쪽, 5쪽.

는 시도, 말하자면 탈매체화에 가깝다. 그래서 종이의 가벼움이 가치있는 것이다. 그것은 “일 톤의 납 덩어리와 똑같이 ‘물질적인’ 대상”이지만, 미적 매체와 결부되어 있는 “독창성, 영속성, 장식적 매력” 등의 “물질적 측면”을 결여한다.2 그것은 육중함이나 장구함과 거리가 멀다.
미술가들은 오래 전부터 종이를 스케치나 드로잉의 용도로 사용했지만, 종이가 미술 작품이 될 만큼 품격있는 재료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종이는 미술사의 주인공이 아니었으나 바로 그 미술사를 기록하는 중성적 기판으로서 언제나 함께 있었다.

[중간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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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같은 책, viii쪽, 5쪽.

김경태, 『온 더 록스(On the Rocks)』, 2013 중 일부.ⓒ EH, 유어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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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미디어는 우리의 세계를 떠받치는 인프라스트럭처로서 무제한의 매끄러운 순환을 새로운 정상성으로 각인한다. 오래된 꿈의 연장선에서, 그것은 여전히 물질과 정보에 대한 완전한 통제와 그에 기반한 최적화된 통합을 잠정적인 지향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자신의 존재는 이 세계의 완성을 추동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자 그 완성을 방해하는 가장 끈질긴 장애물로 남는다. 인간의 신체는 상당히 유연하지만 그럼에도 복원의 한계가 있다. 그것은 어느 정도까지 프로그래밍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예측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불균질한 물질이다. 그것의 가치와 비용은 관점에 따라 매우 비싸게 산정될 수도 있고 극히 저렴하게 취급될 수도 있다. 그것은 불확정적이며 그래서 위험을 수반한다. 이 세계의 목적이자 토대이며 또한 이 세계에 간신히 존재하는 이물질로서,우리의 몸은 종종 투명해질 위험과 투명해지지 못하는 곤란 사이에서 진동한다.
이렇게 시스템에 동화되지 못하는 몸의 잔존은 다른 모든 물질적인 것의 잔존과 더불어 종이의 잔존을 지속시키는 가장 유력한 요인이다.

저장과 전송의 매개체로서 종이의 가치가 빠르게 절하되는 와중에도 신체와의 접면으로서 종이의 가치가 계속 재발견되는 것은 그저 습관과 향수 탓이 아니다. 그것은 사라지지 못하는 신체의 잔존을 반영하고 상기시키며 때로 정신을 우회하여 그의 곤란에 응답한다. 이처럼 정신이 아니라 몸의 이야기를 전할 때, 종이는 종종 책의 형태를 벗어나서 잔존하는 몸의 허물처럼 작게 공간을 덮는다.
2014년 강정석의 개인전 «베이포-X와 홈비디오»전이 열린 인사미술공간 1층 전시장에는 표지가 없는 부클릿이 놓여 있었다. 이 얄팍한 인쇄물은 맞은편에 설치된 ‹시뮬레이팅 서피스 A/B(Simulating Surface A/B)›라는 영상 작업과 세트를 이룬다.
그러니까 관객은 별다른 줄거리 없이 길게 이어지는 영상을 보면서, 또는 그 빛을 쬐면서 부클릿을 읽게 될 것이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컴퓨터 게임의 환경 디자이너로 일하는 친구의 생활을, 더 정확히 친구의 손을 따라간다. 환경 디자이너라고 하면 멋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상은 가상 노가다에 한없이 근접한 일이다. 환경 디자이너는 3D 소프트웨어로 컴퓨터 게임에 들어갈 가상의 건물과 사물들을 만드는데, 물리적 건설 현장과 마찬가지로 사업이 시작되면 고용되고 사업이 완료되면 해고된다. 지문이 닳도록 마우스를 움직이지만 그 손의 노동은 돌을 지고 나르는 것 같은 구체성을 결여한다.


[이하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