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미디어 ‘이후’의 예술

이광석


‘포스트-미디어’ 시대, 그 이후


테크놀로지적인 정보 기계와 소통 기계는 인간 주체성의 핵심에서 작동한다. […] 좋은 방향이라고 하면 그것(정보 혁명과 연결된 기술 진화—인용자)은 새로운 준거 세계(Univers)의 창조 또는 혁신이지만, 나쁜 방향이라고 하면 그것은 오늘날 무수한 개인이 매여 있는 바보로 만드는 대중매체화(매체 지배)이다. 이러한 새로운 영역들에서의 사회적 실험과 결합된 기술 진화로 아마도 우리는 현재의 억압 시기에서 탈출하여 매체 이용 방식의 재전유 및 재특이화에 의해서 특징지어진 포스트-미디어(postmédia) 시대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1

1990년대 초 바보상자 텔레비전을 넘어서서 인터넷의 출현을 목도한 프랑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는, 자신의 유고작이 될 『카오스모제(Chaosmose)』에서 폭압적 스펙터클의 대중매체 시대를 종언할 ‘포스트-미디어’ 시대를 그렇게 예견했다. 당시 가타리는 디지털혁명과 인터넷의 도래로 형성되는 ‘포스트-미디어’ 시대를 지배적 매체의 이행기에서 찾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인간들의 매체 이용 방식에 미치는 질적 변화와 연결짓고 있다. 그가 봤던 포스트-미디어 시대는 대중매체가 뿜어내는 물신의 조장과 매체 소비자의 동질화 경향을 벗어나, 새로운 분산형 네트워크이자 자율의 테크놀로지인 인터넷을 활용하는 능동적 주체의 등장을 축복한다. 즉 포스트-미디어 국면은 리좀(rhizome)적 주체들이 펼치는 집합적 연대와 처음부터 이질적인 미디어들의 새로운 민주적 생태계 형성을 가정한다.  어디 가타리의 언술뿐이랴. 독일의 미디어학자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 또한 비슷한 시기에 오늘로 보면 인터넷 사회에 해당하는 ‘텔레마틱 사회’란 새로운 형질전환의 사회 부상을 예견했고, 흥미롭게도 이에 저항하는 새로운 ‘신(新)혁명가’로 ‘컴퓨터 아티스트’2를 꼽았다. 플루서가 봤던 컴퓨터 아티스트는 기존의 텔레비전 중심의 전체주의적 일방향성과 폭력성을 대체할 수 있는 패러다임 확산자이자 컴퓨터의 글로벌 전자망을 통해 주고받는 정보의 민주적 연결을 확보하는 어나니머스 류의 사회적 해커에 다름없었다.3그는 텔레마틱 사회가 도래하면 메시지 전송망의 소수 독점이 사라지고 컴퓨터 아티스트를 매개로 대중의 지적 산물을 생산·공유하면서 새로운 ‘기술적 상상’이 만개하는 축제의 사회, 놀이의 사회, 목적 없는 사회가 이뤄지리라 봤다.

[중간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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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élix Guattari, Chaosmose, Éditions Galilée, 1992; (한글판) 펠릭스 가타리, 『카오스모제』, 윤수종 옮김, 동문선, 2003, 13~15쪽.
2 특히 플루서의 『피상성 예찬』 모음집 중 1984년 글, “Kunst und Komputer” (259~264쪽) / 번역판 『예술과 컴퓨터』, 273~279쪽을 참고.
3 Vilém Flusser, Lob der Oberflächlichkeit—Fur eine Phanomenologie der Medien, Bollmann, 1993; (한글판) 빌렘 플루서, 『피상성 예찬—매체 현상학을 위하여』, 김성재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이후’ 국면을 버틸 수 있는 국내 예술계의 몇 가지 긍정적 징후들을 언급했으나 이들의 전체 숫자나 작업의 다양성 면에서 여전히 기근 상태이다. 앞서 본 것처럼 ‘이후’의 위기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20세기 초 아방가르디즘의 주요 덕목으로 계승되던 콜라주, 패러디, 전유, 전용 등 재기 넘치는 미학적 방법론이 이제 자본주의적 포획과 온라인 우익의 미러링 효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접속된 듯 보이나 스스로 외부와 단절된 ‘유리 감옥’에 갇힌 현대 주체를 과연 우리는 사회적 타자들과의 관계 층위로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정보생체 기계가 되어가는 인간 실존의 문제를 어떻게 사회미학적으로 풀어갈 것인가?
‘이후’에 도래하는 기술의 유희를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이미 이런 도전적 질문들이 동시대 미디어와 예술을 다루기 위한 중심 화두로 다가온다.

디지털 ‘이후’ 테크놀로지는 이전에 비해 더욱 다루기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접근과 해독에서 더 큰 장벽이 존재한다. 헛발을 딛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영원히 압도될 수도 있다. 미디어 창작 자체가 ‘이후’를 광내는 장신구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 완전할 수는 없지만, 동시대 장인 감각, 대중의 탄력적 ‘떼’ 사회미학, 온라인 ‘소셜’ 매개 능력 등은 그래서 중요한 덕목들이다. 이들로부터 더 나아가 ‘이후’ 국면의 미학적 실천이 지녀야 할 보편적인 고민들, 즉 테크노 자본의 포획에 대한 전술적 대안 마련, ‘이후’예술 장르와 주제의 다양화와 급진화, 기술 사회미학적 가치의 개발 등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더불어 현대 몸-기계-생명의 잡종 인간형의 존재론적 위상을 규명하고 포스트-사피엔스의 사회적 지위를 찾는 법을 발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