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 캡처

마크 피셔


사람들은 와서 ‘터치’를 하고, 터치하는 것처럼 보이며, 이들의 시선은 촉각적 조작의 단면일 뿐이다.1
폴은 혼란스러우면서도 흥미로운 목소리로 “잠깐만, 지금은 죽는 걸 개의치 않지만 미래에는 죽고 싶지 않을 거야…… 미래에는……”이라고 말했다.2

꿈꾸는 사이버공간


오톨리스 그룹(The Otolith Group)의 필름 ‹혐오(Anathema)›(2011)에서 인간은 자본주의 사이버 공간의 기계적 꿈속에 놓여 있다. 이 필름의 이미지는 대부분 커뮤니케이션 장치의 홍보물에서 취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특정한 결과물에 의미적으로 고착되어 있는 해설 사운드와 텍스트가 분리되면서 이미지와 시퀀스들은 괴이한 에로티시즘을 드러낸다. 부드럽고 유연한 오리피스-인터페이스(orifice-interface, 인체 구멍을 통한 인터페이스), 만지는 순간을 용해시켜버리는 이 단단한 표면들, 순간으로 녹아 내리는 이 거리감.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꿈 그 자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필름이 보여주는 무한 침투, 무한 가소성의 액상 크리스털 공간은 이 세계가 어떻게 자본 ‘그 자체’일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30여 년 전, 장 보드리야르는 이 꿈의 면모를 해부했다. 보드리야르는 환각적인 예지력으로, ‘혐오’의 구성적 토대를 이루는 기호학적-리비도적 영역을 그려내는 문장들을 통해 “수많은 자극, 극소화된 취미들, 무한히 분리되는 질의/응답의 교점들로 이루어지는 참여의 대축제”,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접촉에 기초한 총체적 이미지”에 관해 이야기했다.3 그는 이 ‘촉각적 커뮤니케이션 문화’에서 인간이 “마지막 최후통첩의 순간을 지나 유혹의 단계로, 의무적인 수동성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주체의 ‘능동적 반응’—주체의 개입과 ‘유희적(ludic)’ 참여—으로 시작되는 모델, 다시 말해 끊임없이 즉각적인 반응과 유쾌한 피드백, 전방위로 뻗어 있는 접촉을 통해 이루어지는 토털 환경을 향해 나아간다”고 주장했다.4
보드리야르의 이 같은 설명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의 터치스크린 세계에서 기이한 울림을 또렷하게 만들어낸다. 보드리야르는 낡은 비평—반듯이 누워 자신들에게 부여되는 ‘스펙터클’에 복종하는 수동적 인간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비평—이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점을 중요하게 바라봤다.
[중간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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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ean Baudrillard, “The Beauborg Effect,” Simulation and Simulacra, trans. Sheila Faria Glaser,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4, 70쪽.
2 Tao Lin, Taipei, Canongate digital edition, 2013, Location 2041.
3 Jean Baudrillard, Symbolic Exchange and Death. trans. Iain Hamilton Grant, Sage, 1993, 71쪽.
4 같은 책.

유사-현재의 연옥


자본주의적 사이버공간에서 확산되는 GIF 애니메이션만큼이나 이 일시적이고 리비도적인 사로잡힘의 상태를 더 잘 표현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 GIF 이미지들은 외화된 기억들, 그것을 본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아마도 대다수가—다시 떠올리지 못하는 의미 형태이다. 이것들은 발견된 오브제라기보다
발견된 기억들이며 종종 순환적인 감각으로 나타나는 누군가 다른 이의 기억들이고, 장편영화의 기억들, 이를테면 타인들의 매개된 기억들의 기억이다. 그 근원이 모호하고 추적하기 어려울수록 이들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더 평범하고 GIF 애니메이션 이미지는 기억 속에서 더 자주 출몰한다.

GIF는 갇힌 시간의 이미지이고 나쁜 무한성의 이미지이다. 이 GIF 이미지들은 오디오 샘플과도 약간 비슷하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기술적으로 반복되는 오디오 샘플은 반복되는 순간을감출 수 있는 반면 GIF 애니메이션에서 순환 지점은 결코 매끄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GIF의 급정지-급출발 장면, 확실하게 순환하지 못하는 실패의 순간은 GIF에 많은 멜랑콜리와 기이함을 더한다. GIF에 나오는 인물들은 연옥과 같은 상태에 갇혀 있는데, 그 같은 상태는 그들이 순환 상태에 묶여 있다는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유사-현재(pseudo-present)라고 부를 수 있는—파올로 비르노(Paolo Virno)의 개념을 전도시킨 것—곳에 영원히 사로잡혀 한없이 같은 것을 반복한다.

『데자뷔와 역사의 종말(Déjà Vu and the End of History)』에서 비르노는 데자뷔의 센세이션과 역사가 끝을 말하는 포스트모던 감수성 사이에 어떤 연결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그는 “순간적인 현재는 기억의 형태를 띠며, [기억은] [기억의 형태를 띤 현재가] 발생할 때에도 다시 환기된다…… 현재와 유사-과거는 동일한 감각적, 감정적 내용을 가지고 있고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특정한 정서적 결과들이 반드시 뒤따른다. “데자뷔와 상호 21연관된 정신 상태는 ‘자신들이 살아 있는 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전형이다. 이것은 아주 세세한 것까지 미리 정해져 있는 듯
한 미래에 대한 무감각, 숙명론, 무관심을 의미한다.”15

하지만 과연 데자뷔가 현대의 비역사성과 가장 밀접하게연관되는 바로 그 조건인가?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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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Paolo Virno, Déjà Vu and the End of History, Verso, 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