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온라인?

서동진


정보통신 테크놀로지, 무엇보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확산되기 시작한 이후 나타난 변화를 역사 속에 기재하는 방법은 기술문명사의 새로운 계기로 등록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느긋이 정보통신기술의 변화를 조감하는 일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참으로 터무니없어 보이기까지 하다. 그것이 기술 이상의 무엇이라는 점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터넷이 초래한 변화는 기술의 순차적인 연속체(serial) 가운데 하나로 기술을 규정하는 소박한 판단을 추월하고 말았다. 하나의 더 나은 기술적 발견 혹은 발명이 이전의 것을 압도하고 대체하는 기술의 연대기는 이제 낡은 자연사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터넷은 기술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문화 자체가 되었고(이제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 대응하는 인터넷 시대의 예술이란 말에 아무 저항감이 없게 되었다), 사회성 자체를 수정하고 변조시키고 있으며(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전화, 메일, 사진, 인터넷, 공동체 등이 기괴하게 합성된 가상 공동체가 도시화에 버금가는 사회성의 전환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있는 사회이론가는 없을 것이다), 2008년의 허무맹랑한 금융위기처럼 거의 먼지 한 점 없는 파국을 만들어내는 경제 현실(주식과 외환은 물론 파생금융상품이라는 새로운 신용은 모두 탈물질화된 정보가 되어 네트 위에서 생겨나고 사라진다)의 중추가 되었다. 그런 연유로 어쩌면 포스트-온라인 사회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말하는 포스트-온라인이라 인터넷 이후의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의 집합을 가리키는 기술사적인 명명법이 아니다. 포스트-온라인이란 용어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서사(narrative)에 가까울 것이다. 근대성이란 낱말이 시대 구분을 통해 근대와 그 이전 혹은 이후의 차이를 식별하고 규정하려는 서사화를 위한 충동을 발휘하였던 것처럼, 포스트-온라인이란 잠정적인 용어 역시 그러할 것이다. 이는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을 기술이라는 하위 영역에 제한하고 정치나 경제, 문화 같은 다른 영역들과 그것이 맺는 관계를 태평하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해져 버린 시점에 이른 탓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술을 하이데거적인 접근처럼 일종의 존재론적인 개념으로 격상시키는 것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포스트-온라인으로 망라할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의 효과가 더 이상 기술에 원인을 두지 않은 채 사회적 상호작용을 재구조화하고 윤리적이든 미적이든 우리의 주관성이 취하는 형태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출구가 봉쇄당한 세계에 처한 절망감에 사로잡힌 채 음울한 새로운 세계의 초상을 그리며 그로부터 새로운세계의 이미지를 그려내려는 욕망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와 단절한 세계를 상상하고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가 발견한 새로운 것들을 우리가 이르게 된 운명의 도달점의 양태인 것처럼 여기며 그 안에 세계의 모든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과 같은 환영에 사로잡히는 유혹이 범람한다. 사회의 어떤 편린으로부터 총체성을 추적하고 그로부터 무관한 듯 보이는 단편들에서, 그것의 자율성과 타율성을 동시에 포착하려는 일종의 비판적 관상학은 오늘날 갈수록 희귀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아마 사정이 그렇게 된 데에는 오늘날 거대한 지식-기계로 기능하는 인터넷의 역할이 클 것이다. 거의 무한에 가까운 정보들 앞에서 우리는 지식 자체가 하나의 매력적인 대상이 되어야 하는 지식의 주목경제(attention economy)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리고 오늘 트위터를 통해 중계되는 성마른 논쟁에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숨을 고르는 사이에 벌써 그것이 몇 시간 지난 후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현상으로 대서특필되거나 갑자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결산된 과거의 사태처럼 취급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저널 «눈»은 ‘포스트-온라인’이란 주제를 던지며 오늘날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생산하고 있는 변화와 그 여파를 조망하려는 각기 다른 시선들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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