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도나 데 살보

이용우, 도나 데 살보


    이용우 오늘날 비엔날레의 진보적이고 동시대적인 성격 덕분에, 비엔날레는 실험적인 예술 실천을 위한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특히 주류 미술관들이 급진적인 개념과 사회·정치적 변화에 주저했던 1990년대, 비엔날레는 제도권에 실험적 예술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죠. 저는 이 점이 지난 20년간 비엔날레가 놀라운 성장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

    도나 데 살보 비엔날레를 안전지대라 부르고 싶지는 않지만, 저 역시 비엔날레에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비엔날레 공간이 더 큰 자유를 허락한다고 봐요. 지난 휘트니 비엔날레의 광고가 멋졌습니다. 몇몇 동료가 아직도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는데, 광고에는 “열광하든 증오하든 놓치지 말라”(LOVE IT HATE IT DON’T MISS IT)고 쓰여 있었죠. 사람들은 비엔날레에서 무언가 신경을 건드리는, 어쩌면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들을 보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요즘에야 충격이라는 말이 문제의 용어가 되었지만 말입니다. 제 경우 무엇이 충격적인지 이제는 모르겠어요. 이건 또 다른 이야기겠죠. 하지만 저 역시 비엔날레라는 형식이기에 가능한, 즉 주제전으로는 거두기 어렵고 모노그래픽 전시에서 성취하는 바와 사뭇 다른 무엇이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용우 비엔날레가 주최 도시의 홍보 및 이미지 제고를 위한 브랜딩 전략의 도구로 동원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비엔날레가 정보화 시대의 문화관광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지적도 있지요. 일정 부분, 저 역시 이러한 비판의 배경에 자리한 인식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이 비엔날레가 지닌 숙명의 일부라고 할 수는 없을 텐데요.

   도나 데 살보 브랜딩은 문제적인 요소이지만, 현대 생활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브랜딩의 문제는 상당히 복잡한 전제 요소들을 부정하거나 단순화해버릴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광고와 브랜딩에 대한 환원적인 관점에 얽매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큐레이터로서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관람객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미술관에 대해 일정한 신뢰감을 지니고 있죠. 누군가 미술관에 찾아와 머문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 미술관에 오기로 한 것이잖아요. 그러니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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