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연구: 결을 거슬러 솔질하기

강수미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실패’를 ‘성공’의 대립항으로 설정하고, 거기서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상황, 함의)만을 추출해내는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칼 포퍼가 과학이론에서 제시한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을 염두에 두면, 실패란 창의성의 전개 및 진정한 진보의 실현을 위한 필수 과정에 다름 아니다.이를테면 과학자가 새롭고 창조적인 어떤 것을 발견/고안하기 위해 가설을 입안하고, 그 가설을 의식적으로 논박하며 일련의 실험을 통해 자체의 적합성 또는 부적합성, 일치 또는 불일치, 개연성 또는 비개연성, 진리 또는 비진리를 가려내는 과정 . 스스로 반증을 제시하여 전제된 것을 무너뜨리는 과정 . 안에 이미 생산적이고 성공적인 실패의 면모가 담겨있는 것이다.

우리가 첫 장에서 실패에 관한 여러 가지 화두를 제시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 사고의 관습, 우리 시각의 관행에 일종의 전환을 꾀하기 위해서였다. 실패가 정말 나쁘고 부정적이며 비생산적이기만 한 것인가? 우리가 사태를 이분법의 구도 아래서 바라보는 방식은 정말 온전히 사태의 진면모를 끌어안는 방법인가? 등을 질문하고 그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지적인 목적 이면에는 실질적이고 다급한 이유도 있다. 우리는 현실 사회의 문제적 현상들에 대해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비판적 접근이 시급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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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 우리에게는 실패의 긍정성을 예술 영역에 특정해서 담론화하는 일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술가이자 미학자인 바존 브록은 「원기 왕성하고 영웅적인 실패」라는 글에서 앞서 소개한 포퍼의 이론을 원용한 후 “우리 시대 예술에서 성공의 형식으로서 실패가 하나의 주제가 되었다”고 단언한다. 이는 요컨대 자연과학에서 실험이 가설(의 오류)을 반증하는(falsifying) 최선의 방법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현대예술에서 실험적 시도와 기성의 전복, 도전적 예술의 제시와 새로운 예술의 발견이 다른 어떤 미학적 과정, 가치, 성과보다도 중요해졌다는 뜻이다.사실 지난 100여 년간 아방가르드 예술의 역사는 기성의 예술을 반미학적 창작과 비판적 논쟁으로 자극하고, 아직 예술로서 간주되지 않은 생경하고 이질적인 것들을 예술의 새로운 시도로서 긍정하는 실천적 과정이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으니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이하 생략'